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렉 매덕스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 || [[파일:external/www.homeruncards.com/madduxdon.jpg|width=100%]] || [[파일:external/www.axonpotential.com/Greg-Maddux.jpg|width=100%]] || || 물음표 가득한 유망주에서 특급 에이스로 활약한 [[시카고 컵스]] 시절 ||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 || [[파일:external/latimesblogs.latimes.com/greg_3.jpg|width=100%]] || [[파일:external/4.bp.blogspot.com/Maddux,+Greg.jpg|width=100%]] || || 잠깐 거쳤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 말년을 보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 1990년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끌던 투수들 중 한 명이자 그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흔히 매덕스와 함께 [[톰 글래빈|글래빈]]과 [[존 스몰츠|스몰츠]]를 꼽는데, 이 둘 역시 1990년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음을 고려하면 매덕스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의 매덕스가 제일 평가도 높고 제일 유명하지만, 실은 [[시카고 컵스]]의 '''2라운더'''로 입단했다. 그의 아버지가 공군의 조종사. 다시 말해 군인 자녀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보냈어야 했다.[* 아버지가 [[스페인]]에 주둔중인 [[미국 공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레슬러 출신 정치인 [[글렌 제이콥스]]도 이 때문에 출생지가 [[스페인]] [[마드리드]]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형인 [[마이크 매덕스]][* 메이저리그의 명 투수코치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와 그렉 매덕스를 야구에 입문시켰다. 원래 형인 마이크가 처음부터 발군이었으나 금세 따라잡아 버렸다고. 그들을 가르친 라스베가스 벨리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가 메이저리그 팀 스카우터 출신이었던 러스티 메다였는데, 메다는 "공의 속도 보다, 제구력과 무브먼트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매덕스에게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매덕스는 "나는 공을 더 빨리 던질 수 있다. '''근데 왜 그렇게 빨리 던져야 하는거지?'''"라고 고교 시절 코치들에게 의문점을 던졌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을 준 게 바로 러스티 메다였다고. 1982년 드래프트 즈음에 [[마이크 매덕스]]를 찾아온 스카우터들에게 매덕스 형제의 아버지가 '''"니들 몇 년 뒤에 또 우리 집 와야됨."'''이라고 호언장담한 것은 유명한 일화. 스카우터들은 그 당시만 해도, 구속이 84~5마일에 불과한 그렉을 보곤 "제구는 좋은데 구속이 영... 많이 봐줘야 5~6라운드 정도 아닐까?"라며 탐탁치 않게 봤는데, 진짜로 2년 뒤에 또 찾아왔다. 여하튼 1984년 시카고 컵스의 2라운더로 입단해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문제는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실력이 과연 통하느냐는 의문이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게, 매덕스는 대학에서도 러브콜을 거의 받지 못 했고, 프로팀 스카우터들도 그를 탐탁치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컵스가 1라운더로 차마 지명하지 못 했던 건 비리비리한 마른 몸 때문에 체력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것. 제구와 무브먼트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딱 그 정도까지의 유망주였던 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터지면 대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라운더로 지명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1986년에 메이저리그로 첫 콜업이 됐을 때 [[돈 짐머]] 감독이 "살 좀 찌워라. 로테 못 돌고 쓰러질 거 같다."는 반응이었다고 실제로 [[팀 린스컴]] 만큼이나 마른 몸이었다고 한다. 시즌 내내 매덕스는 웨이트에 매달렸고, 내년 시즌인 1987년에 몸을 찌워온 모습을 본 돈 짐머 감독은 "근데 왜 팔다리는 그대로냐?"며, 상당히 궁금해 했다고 한다. 당장 상기의 컵스 시절 모습을 보자. 상당히 마른 편인데, 저 게 찌워온 거다, [[시카고 컵스]] 시절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보이듯이 파이어볼러는 결코 아니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제구와 구위 만을 중점적으로 다듬었고, 2년 만인 1986년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며, 6경기 31이닝 2승 4패 5.52를 기록한다. 우리가 아는 매덕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제이미 모이어는 7승 4패. 1987년에는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었으나, 30경기 155.2이닝 6승 14패 5.61을 기록했다. 또한 시즌 최다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입단 동기이자, 메이저리그 데뷔 동기인 [[제이미 모이어]][* 물론 드래프트 순위는 매덕스에 비해 한참 밀렸던 6라운드 지명이다. 이쪽은 매덕스보다도 평균 구속이 느렸기에 지명에서 매덕스에게 밀린 것이다.]도 12승 15패 를 기록했으니 별로 이상할 건 없다. 사실 [[이닝이터]]의 속성이 있다면 무조건 올리는 게 맞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8년 249이닝 19승 8패 ERA 3.18을 달성하며 포텐이 폭발했고, 우리가 아는 그 매덕스의 14년 연속 200이닝+17년 연속 15승 이상 달성의 전설을 써내려간 서막이 되었다. 이후 컵스는 FA가 된 에이스 매덕스를 --예상대로-- 잡지 못 했고, 매덕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FA 계약을 하며 이적하게 된다. 이후, 전설이 되었다. [[파일:Greg Maddux.png]] 매덕스는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연속으로 15승을 따냈을 뿐더러 사이 영 상을 네 번이나, 그것도 연속[* 1992~1995년]으로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그가 오기 전에도 애틀랜타는 [[1991년 월드 시리즈|월드 시리즈]]에 오를 수 있는 강팀의 반열에 올랐지만, '''14년 연속 지구 우승'''을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당연히 매덕스의 공도 컸다.[* 이 때 애틀랜타의 프론트라인 선발진이 잘 알다시피 [[톰 글래빈]], [[존 스몰츠]], 스티브 에이버리였는데, 부상으로 단명한 에이버리를 제외하면 '''이 셋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후 매덕스는 [[시카고 컵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거쳐 355승의 전설적인 누적 성적을 쌓고 명예롭게 은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